산책

[스크랩] 아둘람 공동체

trevor12 2015. 5. 22. 11:07

<!-BY_DAUM->

아둘람 공동체 -2008-08-14-
사울이 집요하게 다윗을 쫓을 때 이스라엘 땅 어디에서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윗이 도망하였던 곳은 남의 나라 가드 땅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안전하지 않았다. 가드 왕 아기스의 참모들이 다윗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침을 질질 흘리고 몸을 담벼락에 비벼대며 미친 척을 하고 간신히 도망하여 아둘람 굴에 가서 숨었다.
그때가 다윗의 맨 밑바닥 인생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인류 역사에 위대했던 영웅 다윗의 인생도 한 시대를 끊어서 그 한 토막만 살펴보면 이렇듯 비참한 때가 있다.
시편에는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썼다고 알려진 시가 있다. 시편 142편이다. "내 우편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시 142:4)" 그는 그곳에서 그렇게 외로왔다.
삼상 22장 1절에 보면,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을 때,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그리로 모여 왔다고 했다. 이새의 가문이 다 모여온 것이다. 그리고 2절에 보면,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리로 모였다고 했다. 그곳에서 다윗이 지도자가 됐는데 그 때 모인 자가 사백명이었다. 당시의 풍습으로 이 사백이라고 하는 숫자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남자의 수를 의미한다.
후에 이백 정도가 더 늘어서 다윗과 생명을 나누는 6백인이 형성되는 데, 이들은 다윗이 후에 압살롬에게 쫓겨서 도망할 때에도 떠나지 않고 다윗과 함께 따라나섰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흩어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다윗을 끝까지 보필했던 사람들이 이때 아둘람 굴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이 철저한 다윗의 사람들을 아둘람 공동체라 부른다. 다윗을 다윗이 되게 한 주변의 사람들, 그들의 특징은 버림 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빚진 자들이었다.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이었다. 쉽게 말하면 어중이 떠중이요, 무능한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이런 사람들을 어디에다 쓸 수 있겠는가? 누가 이런 사람들을 받아주겠는가?
만약에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이후 승승장구 왕이 되었었더라면, 그가 쫓기어 다니지 않았더라면, 고난 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해 자기의 땅에서 살지 못하고 도망가야 했던 사람들을 환영할리가 없었을 것이다.
저런 쓸데 없는 사람들이 왜 내 주변에 모여 오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고난을 당하고, 그 마음에 원통함이 있으니까 그들의 인생이 자기의 인생 같고, 그들이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 꼭 내 팔자 같구만" 하고 들어주게 됐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도 열리고 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아둘람 공동체와 매우 흡사하다. 버려진 사람들, 갈 곳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받아주어 그의 공동체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만약에 오늘날의 교회들이 아둘람 공동체가 되지 못한다면,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없다. 성공한 사람들이 대접을 받고, 실패한 사람들은 버려진다면, 그곳은 사울의 궁전이요, 헤롯의 궁전일 뿐이다.
그런데 아둘람 굴에서 일어난 더 큰 주요 특징은 그들 가운데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소외 받는 자들이 모였다는 것은 일차적 현상이지만, 그것으로 머문 것이 아니다. 그들 가운데 용사가 생기고, 그 가운데 결집력이 생기고, 그 가운데 능력이 생겨 다윗의 군사가 된 것이다. 버려진 사람들이 새힘을 더고 변화되는 공동체, 교회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늘 기도해야 한다.
나혜영의 종교칼럼 www.clmns.com
<나혜영의 종교칼럼> 댓글 달기
 
출처 : 예.아 -YEAH- 그 환한 빛
글쓴이 : 예아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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